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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allade of...

먹히고 먹히는 것.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티비를 설치 했다.

나는 집에 티비가 없다라는 것에 나름대로의 프라이드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오랜 역사를 깨고 티비라는 것을 들인 것이다.

막상 티비를 설치했는데 볼만한 프로그램은 없었고... 어릴 때나 좋아했던 네셔럴 지오그래픽 (동물의 왕국)을 자주 틀어 놓는다.

새를 피해 몸을 피한 곤충은 결국은 나무늘보 같이 생긴 이상한 동물에게 먹히고,

그 동물은 결국 치타같은 것의 먹잇감이 되어버린다.

새끼 치타를 혼자 두고 간 어미 치타는 그 댓가를 치르게 되고, 결국 먹히지 않는 것은 가장 강한 존재이다.

 

오랜만에 프레드에게 하우스 쉐어를 제공(?) 했던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몇 년만에 내게 메세지를 보내며 근황을 묻길래 굉장히. 열심히 살던 이 오빠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우리는 만나서 밥이라도 먹기로 했다.

이상하게 나는 오빠에게 연락이 왔을 때, 이 사람. 분명 나에게 뭔가 영업이라도 할 생각인가 보군. 그런 느낌이 들었다.

 

명동에 꽤 유명한 훠궈뷔페집에 갔는데 오빠는 처음 먹으러간 시스템에 좀 낯설어 했고,

그 낯섬에. 정확히는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 - 자체에 불편함이 있어 보였다.

나는 친절하게 메뉴를 추전해줬고, 셀프바에서 원하는 소스를 만들면 된다고 설명해줬다.

그런데 오빠가 한 숟가랑 한숟가락 자기가 담고 있는 재료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듯 종업원에게 자기가 잘 하고 있음을 확인 받았다.

 

오빠는 마치 나에 대한 배려이냥, 나의 건강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칭찬할 각이다.

 

나는 순진하게 대답했다. 나의 배변 활동에 대한 주기며, 내시경 받을 때 수면마취가 안들어 힘들었다는 둥...

밥을 먹는 동안은 그럭저럭 스토리가 나쁘지 않았다.

밥은 각자 자기가 먹은 것은 알아서 배분하는 것이 편하다고 나는 그렇게 내 할당량에 대한 비용을 먼저 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밥을 얻어먹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이런 마음의 부담감을 위해서라도 나는 더치페이가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는 부족한 수다를 채우기 위해 스타벅스로 갔다.

그때부터 오빠의 작전을 빛을 발휘하였고, 이내 인바디 결과 용지에 찍힌 amway를 보았다.

아니 그럼 그렇지. 오빠가 5년도 더 지난 나의 변비걱정을 기억해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지 않는가!!!!

오빠는 처음엔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성공한 사람들의 비즈니스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 하더니

일을 하는 사람 따로 있고 돈을 버는 사람 따로 있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더니, 서서히 가방에서 준비되었다는 듯이 나오는 찌라시들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다.

 

나는 사실 그런 삶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사는 삶이 싫다.

내가 직접 느끼고 이해하고 보듬어가며 그렇게 스토리를 나눠가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100% 포커스해도 그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걸리적거리는 인맥관리에 내 에너지를 쏟는 것은 정말 아까운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 만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을 걸고 있었다.

나는 부 수입으로 벌어들이는 그 200만원이 전혀 탐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암웨이 방식도, 공평한 적하지만 사실은 부자가 되고 싶고,

남의 시간과 열정을 좀 빌려도 된다는. 사실상 그런 욕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오빠의 눈은 욕심으로 득실득실 했고, 자기의 노력 역시 결국 남을 위해 먹히는 것인지 모르고.

 

(뭐 그게 자기가 가야할 길이라고 느낀다면 맞는 길일 수 는 있다. 다만 나의 경우 나는 옷을 좋아하고 그것으로 성취감을 내는 것이 좋은데, 이런 다른 돈벌이의 유혹에 넘어갈 수 없다. 는 의지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뭐 뭔가 분명히 이루고 싶은게 없다던가,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적당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빠에 대해서 말하자면 길다.

오빠는 항상 욕심이 많다.

자기가 해낼 수 있는 범위를 모를 정도로 바보같아 보이진 않는데, 그것을 껍데기 뿐인 열정으로 부피를 키워나간다.

오빠가 입은 옷도 그렇다.

그것은 하나도 오빠랑 어울리지 않는다.

자기랑은 어울리지 않은 잘 맞춰입은 정장을 보면 희안한 기분이 든다.

저렇게 잘 맞춰입은 정장이 어울리지도 않는데 왜 입었을까 생각해보면,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잘 갖춰입었다. 잘 입었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옷을 입는 것이다.

거기엔 자기의 취향이나 의미가 없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만 존재할 뿐.

 

나는 그래서 오빠한테 이야기 해줬다.

요즘 사람들은요. 자기 삶을 온전히 살 줄 아는 사람이 없어요.

다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싶어해요.

거기에 자신은 없어요.

어디에 가서 뭘 먹고 싶다 부터가. 내가 정말 그 음식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가 거기에서 뭘 먹었다에서 시작되잖아요.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한 오빠는 계속 자기의 니즈만 내게 퍼부었다.

어떤 사람이 언제 무슨 강의를 하는데 니가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둥.

 

어쩐지 오빠가 안쓰러웠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5년 만에 만난 나의 변비스토리까지 기억해내는 오빠인데...

왠지 남에게 먹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지막 인사할때에도 오빠는 모르는 것 같았다.

 

네셔널지오그래픽 법칙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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